꼬꼬무 226회 언노운 : 사선을 넘어

꼬꼬무 226회 언노운 : 사선을 넘어

6월 4일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26회 ‘언노운 : 사선을 넘어’ 편에서는 국가를 위해 싸웠지만 결국 민간인 신분으로 사형당한 북파공작원 심문규의 비극적인 삶이 공개됐다.

국가를 위해 싸웠지만 버려진 북파공작원

SBS ‘꼬꼬무’가 국가를 위해 싸웠지만 결국 민간인 신분으로 사형당한 북파공작원의 비극적인 삶을 조명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4일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언노운 : 사선을 넘어’ 편으로 꾸며졌다.

배우 홍수현, 이엘리야, 이규한이 리스너로 출연했다. 세 사람은 시대의 경계 속에서 버려진 한 남자의 일생을 따라가며 충격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꼬꼬무’의 2049 시청률은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해당 기록은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집계됐다.

일제강점기 말기 시작된 심문규의 비극

이날 이야기는 1942년 일제강점기 말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강원도 철원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자란 심문규는 강제 징집된 후 악명 높은 일본 관동군의 차별과 폭행 속에서 가까스로 생존했다.

그러나 해방 후에도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소련군 포로에서 탈출한 후 다시 중국 팔로군에 붙잡혀 공산군에 편입됐다.

이후 탈출에 성공한 심문규는 38선을 넘어 고향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가족의 실종이었다.

절망 속에서 이번에는 북한 보안대에 들어갔다. 그는 군사 경험으로 빠르게 분대장으로 승진했고 결혼해 아들을 얻으며 잠시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그의 운명은 다시 뒤틀렸다. 철원 전투에서 국군에 붙잡힌 그는 대한민국 수색대에 편입됐다.

이후 심문규는 비밀 첩보부대 HID 요원으로 발탁됐다. HID는 민간인으로 위장해 적진에 침투하는 극비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었다.

가족 생계를 위해 다시 침투 공작원이 된 심문규

그는 첫 작전에서 중공군 장교 납치 임무에 투입됐다. 작전에서 포로 생포에 성공하며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이어 과거 상관에게 북한 침투 임무를 제안받았다. 가족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고 임무 성공 시 복귀를 보장한다는 조건이었다.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결국 다시 침투 공작원이 됐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또 한 번 사선을 넘는 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임무를 성공했음에도 구조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침투 29일째 그는 본부로부터 ‘약속 지점에서 만나자’는 무전을 받았지만 사실상 버려진 상태가 됐다.

또한 가족에게도 약속된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탈진 상태로 북한군에 붙잡혔다.

포로들을 통해 그는 겨우 8세에 불과한 아들이 남한에서 자신처럼 북파공작원으로 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심문규는 무너졌다.

그의 선택은 가족과 아들을 향해 있었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그는 또 다른 위험한 길을 택했다.

남파 간첩 선택과 아들 심한운 씨의 눈물

그는 남으로 가기 위해 남파 간첩을 선택했다. 남한으로 온 후 아들의 생존을 확인하고 스스로 자수했다.

당시 아버지를 만났던 심문규의 아들 심한운 씨는 “슬픔이 막 터져 나왔다. 눈물이 콱 쏟아졌다”고 오열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 세월 떨어져 있던 부자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이를 본 이엘리야 또한 “얼마나 그 시간 동안 아들이 보고 싶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엘리야는 심문규가 견뎌야 했던 시간과 아들을 향한 마음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심문규는 자수했지만 연기처럼 사라졌다. 1961년 대구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죄명은 간첩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분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다.

이규한은 “미칠 노릇이지 않나. 한 인간을 나라에서 죽인 것과 다름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국가를 위해 싸웠던 한 사람이 끝내 국가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렸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다.

재심으로 밝혀진 무죄와 끝내 찾지 못한 유해

이후 아들 한운 씨는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다”라며 재심을 신청했다. 6년의 노력 끝에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해는 끝내 찾지 못했다. 무죄가 밝혀졌지만 가족에게 돌아와야 할 마지막 흔적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셈이다.

남과 북이 나뉜 비극으로 발생된 심문규 부자의 아픔에 이엘리야는 “마음이 애잔하고 애통하면서도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홍수현은 “안타깝다. 유해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규한은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문규의 삶이 단순히 과거의 비극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1951년부터 2002년까지 북파공작원으로 양성된 인원은 약 1만3000여 명이었다. 이 중 절반 가까이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멘트가 전해졌다.

이에 이규한은 “가족들은 혹시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희망과 좌절을 수십 년 동안 겪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만큼이나 기다린 가족들의 시간도 길고 고통스러웠다는 말이었다.

방송이 끝난 후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아들 만나려고 목숨 걸고 남파 간첩을 선택하다니 눈물”, “무죄가 밝혀졌는데 유해를 못 찾은게 너무 슬퍼”, “아들분 인터뷰 장면에서 같이 울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또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 희생은 잊으면 안돼”, “북파공작원 절반 가까이가 못 돌아왔다는 게 진짜 충격” 등 뜨거운 반응도 나왔다. 심문규 부자의 이야기는 방송 이후에도 많은 사람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한편 ‘꼬꼬무’는 세 명의 이야기꾼이 스스로 공부하며 느낀 바를 각자의 ‘이야기 친구’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1:1로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목요일 밤 10시 20분 SBS에서 방송된다.

진실이 뒤늦게 밝혀졌지만 심문규의 유해는 아직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무죄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이 비극은 어떤 방식으로 더 기록돼야 할까?

출처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