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241회 응답하라, 자유와 도전!

9월 17일에 방송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41회에서는 한때 회원 수 1000만 명과 커뮤니티 110만 개를 거느렸던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의 현재와 대한민국 IT 태동기의 뜨거웠던 기록이 공개된다.

회원 1000만 ‘프리챌’ 창업자의 현재

한때 국민 플랫폼으로 불렸던 프리챌을 만든 전제완은 현재 강원도 양양의 한 펜션에서 청소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대한민국 인터넷 산업의 중심에 있었던 창업자가 전혀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토니안, 한소은, 김효진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전제완은 자신의 현재를 숨기거나 과거의 성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청소가 현재 제 전공”이라고 담담하게 말한 그는 프리챌을 둘러싼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제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는다.

정상에 섰던 시절과 지금의 삶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지만, 전제완은 실패의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이야기한다. 화려했던 과거 대신 펜션을 청소하는 현재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프리챌의 흥망을 따라갈 이번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삼국지 유비’를 떠올리게 한 인재 영입

삼성물산 출신인 전제완은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되던 시기에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당시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직접 모이고 관계를 맺는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보고 프리챌을 이끌며 국내 인터넷 벤처 열풍의 중심에 섰다.

특히 사람을 모으는 능력이 남달랐다. 조수용 전 카카오 공동대표를 비롯해 당시 주목받던 인재들을 영입하고 기존 대기업과는 다른 실리콘밸리식 조직 문화를 구축하며 빠르게 회사를 키웠다.

이를 들은 토니안은 “삼국지의 유비를 보는 듯하다”라고 감탄한다. 뛰어난 장수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던 유비처럼 전제완 역시 사람을 끌어당기고 각자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조직을 구성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프리챌은 이런 인재들과 함께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게시판과 자료실을 이용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커뮤니티 서비스는 인터넷이 새로운 일상이 되던 시기 수많은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PC통신에서 시작된 온라인 세상의 변화

스마트폰은커녕 초고속 인터넷조차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PC통신이 사람을 연결했다. 통신 요금을 걱정하면서도 늦은 밤까지 접속해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이 친구가 되거나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초고속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컴퓨터 화면 속 세상도 크게 달라졌다. 정보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던 인터넷은 사람들이 직접 모이고 대화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대한민국을 휩쓴 닷컴 열풍 속에서 수많은 기업이 이용자를 자신들의 서비스로 끌어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한가운데에서 커뮤니티를 앞세운 프리챌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갔고 한때 회원 수 1000만 명, 개설된 커뮤니티 약 110만 개를 기록하는 국민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프리챌의 성장은 한 기업의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열정 넘치는 젊은 인재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면서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었다.

월 3000원 유료화가 만든 거대한 갈림길

빠르게 늘어난 이용자와 커뮤니티는 프리챌의 힘이었지만 동시에 막대한 운영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숙제가 됐다. 서버와 저장 공간을 계속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프리챌은 새로운 생존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결국 2002년 프리챌은 커뮤니티 유료화라는 큰 결정을 내렸다. 커뮤니티를 계속 운영하려면 운영자가 매달 3000원의 비용을 내는 방식으로, 당시 무료 인터넷 서비스에 익숙했던 이용자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였다.

유료화 발표 직후 이용자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유료화를 반대하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다른 무료 커뮤니티 서비스로 이동하자는 움직임까지 이어지면서 프리챌은 성장기와 전혀 다른 상황을 마주한다.

당시 프리챌은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키운 커뮤니티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 비용을 내야 한다는 점에 반발했고, 이 결정은 프리챌 역사에서 거대한 갈림길이 됐다.

국민 플랫폼의 ‘접속 종료’

영원할 것 같았던 인터넷 서비스에도 결국 끝은 찾아왔다. 수많은 이용자가 밤을 새우며 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던 온라인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서비스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프리챌 역시 한때 대한민국 인터넷 문화를 상징했던 위치에서 점차 멀어졌다. 사이트가 사라진 뒤에는 그 안에 남아 있던 수많은 게시글과 사진, 사람들의 관계도 더는 예전 방식으로 꺼내볼 수 없는 기억이 됐다.

그러나 프리챌이 만들었던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와 그 시절 벤처 기업들이 시도했던 도전은 이후 한국 인터넷 산업의 성장 과정에 한 장면으로 남았다. ‘접속 종료’와 함께 사라진 것은 하나의 사이트였지만 그곳에서 새로운 온라인 문화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때 1000만 명을 연결했던 창업자에서 펜션 청소부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전제완은 자신의 지난 선택을 어떻게 돌아보고 있을까? 대한민국 인터넷의 뜨거웠던 성장과 프리챌의 ‘접속 종료’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의 반전 근황과 국민 플랫폼의 성장과 쇠퇴에 얽힌 이야기는 9월 17일 목요일 오후 10시 20분에 방송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41회 ‘응답하라, 자유와 도전!’ 편에서 공개된다.

사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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