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성 30주년을 맞은 유리상자가 오랜 시간 팀을 이어온 비결을 “계약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농담으로 풀어냈다. 각자의 활동 영역을 존중하면서 필요한 순간에 다시 만나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의 관계가 유리상자다운 유머와 함께 드러났다.
30년 듀오의 장수 비결 ‘계약’
이세준은 유리상자의 관계를 설명하며 “저희 사실 계약으로 맺어진 사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자의 활동 영역이 있다 보니까 스케줄이 아니면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라며 팀 활동이 없는 날에는 서로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의 첫 번째를 맡게 된 게 저희들의 최근 가장 중요한 스케줄입니다”라고 덧붙이며 오랜 활동 기간을 무겁게 포장하기보다 특유의 농담으로 풀어냈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한 팀을 유지해온 방식은 늘 붙어 지내는 관계와는 거리가 있었다. 박승화와 이세준은 유리상자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설 때는 함께 움직이지만 각자 라디오, 공연, 솔로 음악 등 자신의 활동 영역도 이어왔다. 제작발표회에서도 유리상자는 소극장 공연과 관객 소통에 익숙한 팀으로 소개됐고, 박학기는 서로 정해진 대본에만 기대지 않고 관객과 함께 흐름을 만드는 프로그램에 잘 맞는 팀이라고 판단했다.
첫 회에 자주 불리는 유리상자
박승화는 또 다른 공통점을 꺼냈다. 그는 “유리상자는 어디서든 첫 번째 손님으로 많이 기용됩니다”라며 새 프로그램의 시작을 자주 함께해온 이력을 언급했다. 이어 “저희가 출연한 첫 방송이 나간 후 제작진분들이 아마 많이 바꾸실 거예요”라고 말해 첫 회 특유의 시행착오까지 웃음의 소재로 바꿨다.
이세준도 같은 흐름을 이어갔다. 그는 “처음엔 시행착오가 있는데 너무 좋은 가수가 나오면 아깝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유리상자는 첫 회에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카드라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또 미진한 게 있어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려놓는 능력자들이에요”라고 덧붙여 스스로를 낮추는 농담과 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이런 발언은 제작발표회에서 나왔던 박학기의 설명과도 맞닿아 있다. 박학기는 유리상자가 수많은 공연을 통해 관객과 수평적으로 대화하는 데 익숙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어 첫 게스트로 가장 편하게 기댈 수 있는 팀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소극장 관객이 단순한 방청객이 아니라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참여자로 설정된 만큼, 즉흥적인 대화에 익숙한 두 사람의 장점이 첫 회에 필요한 역할과 연결됐다.
박학기가 붙인 ‘토크계의 119’
박학기는 두 사람의 현장 대응력을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설명했다. 그는 “유리상자 두 분이 ‘토크계의 119’예요”라며 “어떤 상황이 와도 불도 꺼주고 해결을 해주기 때문에 제작진에게는 기대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라고 말했다.
유리상자는 노래만 들려주는 게스트보다 토크와 라이브를 함께 책임질 수 있는 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빈칸 채우기’ 역시 가수의 대표곡을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을 만들어온 과정과 삶의 이야기를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나누는 형식이다. 약 50명의 관객이 아티스트와 직접 대화하고 사연을 더해 공연의 흐름을 완성하는 구조인 만큼, 예정된 순서 밖에서 생기는 상황까지 받아주는 능력이 중요하다.
농담 속에서 드러난 오래된 호흡
유리상자는 제작발표회에서도 진지한 질문을 그대로 받아치기보다 서로를 향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었다. 박승화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박학기를 두고 친근한 농담을 건넸고, 이세준 역시 작은 소극장에서 시작하는 콘텐츠의 장점을 관객과의 거리와 온라인 확장성에서 찾았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해도 한 사람이 던진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호흡은 오랜 팀 활동에서 쌓인 익숙함을 보여줬다.
대표곡 ‘신부에게’, ‘순애보’, ‘사랑해도 될까요’, ‘아름다운 세상’처럼 유리상자는 오랫동안 대중에게 익숙한 노래를 남겨왔다. 이번 자리에서는 그 긴 시간을 거창한 성공담으로 설명하는 대신 “계약 관계”라는 말로 시작해 각자의 영역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한 팀으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방식을 보여줬다.
서로 자주 만나지 않아도 무대에서는 곧바로 호흡을 맞추는 관계가 오히려 30년 팀워크의 방식처럼 들린다. 유리상자가 웃음으로 꺼낸 ‘계약 관계’라는 장수 비결은 어떻게 보였을까?
오래 붙어 있어야 오래 간다는 통념 대신 각자의 활동을 지키면서 유리상자가 필요할 때 다시 합을 맞추는 관계를 유머로 설명한 셈이다. 농담처럼 시작한 “계약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한마디에는 30년 동안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팀을 놓지 않은 두 사람만의 방식이 담겼다.
사진 : MBN